[견밀] 영원한 것

사랑해요. 기약할 수 없는 영원을 입에 담고 싶을 만큼. ...수많은 논의가 있었다. 제이드가 근처 호텔을 잡아 들어간 뒤에도 네 여자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 릴리아는 중간중간 지루해했지만 - 결국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견설지는 수면 모드에 들어간 릴리아와 밀리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부엌에서 물을 끓이고 있는 클라라에게 다가갔다. 3인 가구용 매물로 올라왔던 집은 성인 4인에게는 살짝 비좁았다. "커피라니... 안 주무시게요? 애들 자는데 같이 주무시죠. 거실 소파에 이불 깔아뒀어요." "아뇨. 내일도 할 일이 있으니 슬슬 잠들어야죠. 이건 커피가 아니라 레몬 밤이에요. 설지 씨도 한 잔 하실래요?" 차는 즐기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편에 앉아 클라라가 건네는 컵을 받으며..

그걸로 클라라가 만족한다면 난 좋아. . . . 심각했던 분위기는 식사가 나오면서 조금 풀어졌다. 클라라는 우는 것을 멈추고 공심채 볶음을 입에 넣었으며, 릴리아는 잘 먹네~ 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 틈을 타 밀리와 견설지는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 때문에 이번 일을 계획한 거야? 밀리가 고개를 끄덕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남의 귀찮은 일에 시간을 쓰기는커녕, 들여다보기도 싫어졌다. 어린 때여야 그 혈기로 오지랖이라도 부리지, 지금은 자신에게도 소중한 것이 많아 그걸 돌보기에도 바빴기 때문이다. "설지한테 뭘 해달라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내가 도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살짝 손만 빌려줘요. 응?" 하지만 그 '소중한 것'이 이렇게 말하면 견딜 ..

난 항상 이상한 사람이었는걸요. . . . 이틀 뒤 공항, 네 여자는 서로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느끼며 가만히 서 있었다.먼저 클라라. 저 멀리에서 릴리아가 보임과 동시에 표정이 확 밝아졌던 그는, 릴리아가 팔짱을 낀 상대를 보자마자 축 하고 시무룩해졌다. ...저 사람이 말로만 듣던 견설지? 나보다 키가 크네. 체격도 좋고... 날카로운 눈매에, 잘생겼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돌연 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릴리아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잖아?! 다음으로 밀리. 그는 옆에 서 있는 클라라가 붉으락푸르락 하는 것을 보며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질투는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막론하고 존재했으며, 지난 이틀 동안 상상 속에서만 그를 괴롭히던 광경이 현실이 되었으니 말이..

나 또한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 . . 밀리의 말은 옳았다. 첫날 그렇게 울고불고 했던 것이 머쓱할 정도로 클라라는 빠르게 괜찮아졌다. 어쩌면 수다스럽게 그 자리를 채워준 밀리가 있어서일지도, 이틀이라는 짧은 기한 덕분일지도 몰랐다. 하나 확실한 것은, 그동안 클라라가 견고하게 가지고 있던 신념이 깨졌다는 점이다. 난 그냥 두려웠던 것 같아요. 릴리를 잃는다는 게. 퇴근 후 밀리를 근사한 레스토랑에 데려간 클라라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더욱 한 가지 길밖에 없는 것처럼 굴었죠. 잠시라도... 눈을 떼면 사라져 있을까 봐 매일 불안했어요. 그리고 결국 사라지고 말았네요." "그랬네요. 대신 저를 남겨두고 갔죠. 그래서, 어떠세요? 릴리아 없이 지내본 하루의 소감은요." 클라라가 대답을 고민하는 ..

그 마음을 알기에 나와 자리를 바꿔 준 거고요. ...자기 소유가 아닌 안드로이드와 집으로 돌아간 클라라는 그 날 내내 침울한 표정이었다가, 위스키를 얼음도 없이 들이킨 후에는 대놓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왜 말리지 않았어요? 난 밀리를 믿었는데... 릴리가 엉뚱한 면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밀리는 그걸 익숙하게 달래며 스스로의 머리를 잡아당기는 클라라의 손을 말렸다. 릴리아가 써 준 편지를 봤잖아요. 그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으니... 이틀만 기다려 줄 수 없을까요? "휴... 그렇죠. 마냥 사고친 것처럼 대하면 안 될 텐데. 아까도 릴리에게 한 소리 하려다가 설지 씨가 말려주셨는데 말이죠. 전 아직 멀었네요..."전화로 노발대발하려던 클라라를 말린 건 다름 아닌 견설지였다..


내가 정신 나가는 꼴이라도 보고 싶어?! . . . 견설지는 자신의 적응력에 넌더리가 났다.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가 밥도 좀 안 들어가야 하는데, 오늘도 삼시세끼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먹고 만 탓이었다. 간장이랑 식초 넣어서 추가로 간 하니까 맛있네. 닭고기를 입에 넣은 채 비어있는 앞자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허하고 쓸쓸한 감정은 분명 있었다. 자신이 언제 돌아오지도 알려주지 않는, 그리하여 기다림에 기약을 없앤 밀리의 탓이었다. 잠시 고독을 음미하고 있자면 벨소리로 바꿔둔 휴대폰이 또롱. 하고 울렸다. '설지. 혹시 지금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줄 수 있어요? 데리러 와 주면 고맙겠어요. 물론 다른 약속이 있으면 안... ...' 전부 읽..

항상 당신을 사랑하는 밀리로부터. . . . 점심식사를 끝낸 후에는 더 그라운드 오브 알렉산드리아 안의 정원에서 산책을 했어요. 릴리아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음, 설지에게는 갈수록 비밀만 많아지네요. 그래도 당신이 바란다면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고, 뜻밖의 만남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솔직히 말해 봐. 방금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런 표정을 한 건데?" 30분간의 공방, 그리고 3분간의 침묵이 뒤를 이었다. 패배가 확실해져 온 밀리는 눈을 질끈 감고 용기를 끌어모았다. 자신의 못난 부분을 인정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사실은... 아, 그래.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었다. ...그래서 설지를 생각하..

내가 누군가를 질투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 . . 가녀린 인상과는 다르게 릴리아는 포크를 멈추지 않았다. 빵 위에 베이컨과 계란, 양상추를 잘 얹어 한 입. 약간 매콤하게 양념된 호박과 가지를 한 입. 평소에 밀리는 '설지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요~' 라고 말하곤 했으나, 지금에 와서야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릴리아. 먹방 유튜버를 해 볼 생각 없어요? 릴리아는 입 안에 든 것을 우아하게 씹어 삼키고는 물을 마셨다. 그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안드로이드가 그걸 해서 무슨 의미인가요? 저장공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는걸요." "많이 먹어서 그런 말 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 뭐랄까, 복스럽게... 아. 보기 좋게 먹는다는 뜻이에요. 아무튼 먹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

서로가 없어도 그럭저럭 괜찮을 수 있을까? ...한편, 그리움을 한 몸에 받는 밀리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그 역시 속 없이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릴리아는 근처 식당을 알아보던 밀리를 끌고 광장으로 가더니, 목적지도 말해주지 않고 어떤 버스에 태웠다. 어딜 가는 건데요? 캐리어는 그대로 둬도 괜찮아요? 질문을 연발하는 밀리에게는 '전부 알면 재미없잖아요?' 라는 말로 일관했다. 그래서 지금은 반쯤 포기한 채로 창밖의 경치를 즐기는 중이었다. 서프라이즈를 위해 검색도 금지당한 상태 - 밀리는 이런 부분에서 과하게 성실했다 - 였지만, 여전히 릴리아가 밉지는 않았다."아, 다음 역에서 내려야겠다. 걸어서 5분 정도면 도착해요. 밀리도 분명 좋아할 곳이니까 너무 토라져 있지 말아요. 나 정도면 좋은 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