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 20

2024. 11. 26. 17:16

그걸로 클라라가 만족한다면 난 좋아. 

 

.

 

.

 

.

 

심각했던 분위기는 식사가 나오면서 조금 풀어졌다. 클라라는 우는 것을 멈추고 공심채 볶음을 입에 넣었으며, 릴리아는 잘 먹네~ 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 틈을 타 밀리와 견설지는 소근소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 때문에 이번 일을 계획한 거야? 밀리가 고개를 끄덕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서른이 넘어서부터는 남의 귀찮은 일에 시간을 쓰기는커녕, 들여다보기도 싫어졌다. 어린 때여야 그 혈기로 오지랖이라도 부리지, 지금은 자신에게도 소중한 것이 많아 그걸 돌보기에도 바빴기 때문이다. 

 

"설지한테 뭘 해달라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냥... 내가 도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살짝 손만 빌려줘요. 응?"

 

하지만 그 '소중한 것'이 이렇게 말하면 견딜 수 없기도 했다. 견설지는 기꺼이 귀찮음을 감수할 마음을 먹은 뒤 살짝 미소지었다. 밀리가 안심한 듯 따라 웃는 것만 보면, 정말 뭐든지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다들 팍팍 드세요. 부족한 거 있으면 더 시키시고요. 일단 뱃속이 차야 뭐든 되지 않겠어요? 그는 회사에서 후배들을 격려하듯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아~ 맛있었어. 좋은 식당에 데려와 줘서 고마워."

 

식사가 끝나고 나면 그릇이 싹 치워지고 따뜻한 차와 유과가 후식으로 나왔다. 릴리아가 그걸 태평하게 오물거리고 있는 동안, 나머지 네 사람은 누가 먼저 발언할지에 대해 눈치싸움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을 든 것은 클라라였다. 네, 무슨 일이시죠? 그는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릴리아를 힐끔거리더니, 목을 여러 번 가다듬고 말을 시작했다. 

 

"일단 결론을 '릴리아에게도 정신적 이상이 있다' 라고 한다면...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릴리아 본인은 그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전 릴리아의 동반자로서 그걸 주장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이드 씨만 괜찮으시다면 시드니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상담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릴리아 씨의 무망감은 기질 쪽에 속하며, 타고난 것을 바꾼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죠. 제이드가 말을 보태면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이것이 자신의 욕심이라는 생각는 버릴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릴리아를 이대로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너를 위해서'라는, 자신의 마음을 포장하는 뻔뻔한 짓은 하지 않겠다 되뇌이며.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릴리아 씨와 같은 사례가 여러 건 있었고, 그것이 상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가만히 놔둘 수 없죠. 이미 망한 회사이니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지만, 아직 남아있는 K사 출신 안드로이드들에게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제이드와 클라라가 의기투합하고 있지만 또 번쩍 들어올려지는 손이 있었다. 견설지였다. 돌아가는 건 좋은데, 두 사람 당분간은 떨어져 지내는 게 좋겠어요. 작은 집 하나 정돈 얻어줄 수 있잖습니까? 그 말에 제일 놀란 건 밀리였다. 떨어져 있는 걸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먼저 제안하다니. 클라라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눈을 날카롭게 떴다. 

 

"설지 씨는 제 마음을 모르시지 않을 텐데요? 떨어져 지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 "

 

"이미 한 번 지내봤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물론 좀 우울해지고 성격이 나빠지고 쉽게 피곤해지긴 하지만... 할 만 해요. 서로의 감정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요."

 

씩씩거리려는 클라라의 어깨에 척, 하고 팔이 걸쳐졌다. 잠깐, 뭐예요! 견설지는 거부하려는 클라라를 방의 구석으로 데리고 가 속삭였다. 이게 바로 밀당이라는 겁니다. 당신이 항상 곁에 있는데 그리움을 느낄 틈이 있겠어요? 얼굴도 좀 덜 비추고, 아쉬움을 느끼게 만들어야 바라는 마음이 생기겠죠.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 클라라 해밍턴이 미성숙한 편에 속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는 직장에서는 침착하고 성실한 동료였으며,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자리에서는 제일 귀가 얇고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 

 

"... ... ...정말일까요? 그럼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생활은, 내가 가끔 돌봐주면 되는 거고..." 

 

점점 설득되어 가는 클라라와 최선을 다하는 견설지. 그 둘의 뒷모습을 보며 밀리는 슬쩍 릴리아의 옆자리로 옮겨갔다. 어떻게 생각해요?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서요. 릴리아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말을 들어도 동요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로 작게 대답했다. 내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향이면 좋겠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상관없어. 왜냐하면... 

 

'[견밀] 영원한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원한 것 21(완)  (0) 2024.11.27
영원한 것 19  (0) 2024.11.25
영원한 것 18  (0) 2024.11.24
영원한 것 17  (0) 2024.11.23
영원한 것 등장인물 외관(1122)  (0) 2024.11.22

BELATED ARTICLES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