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 14

2024. 11. 20. 14:50

 

내가 누군가를 질투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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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인상과는 다르게 릴리아는 포크를 멈추지 않았다. 빵 위에 베이컨과 계란, 양상추를 잘 얹어 한 입. 약간 매콤하게 양념된 호박과 가지를 한 입. 평소에 밀리는 '설지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요~' 라고 말하곤 했으나, 지금에 와서야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릴리아. 먹방 유튜버를 해 볼 생각 없어요? 릴리아는 입 안에 든 것을 우아하게 씹어 삼키고는 물을 마셨다. 그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안드로이드가 그걸 해서 무슨 의미인가요? 저장공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는걸요."

 

"많이 먹어서 그런 말 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 뭐랄까, 복스럽게... 아. 보기 좋게 먹는다는 뜻이에요. 아무튼 먹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서 그래요."

 

변덕스러운 여자는 그제서야 포크를 놓았다. 세 잔째인 탄산수 컵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고, 잠시 뒤 '그것도 괜찮겠네.' 라는 답을 내어놓았다. 그러면 밀리는 평생 바라던 소원이 이뤄졌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럼으로써 인정해야 했다. 클라라가 몇 달을 노력해도 이뤄지지 않았던 일을, 이 애가 반나절 만에 이뤄주었다는 사실을. 릴리아는 밀리를 만나면서부터 조금씩 삶에 욕심이 생겼다. 

 

"있잖아. 넌 이곳에 오기 전 어떻게 지냈어? 네 주인은 누구인지, 평소에는 그와 어떻게 지냈는지. 그런 걸 알고 싶어."

 

놀라움의 역치가 높아진 지금은 이 말을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밀리는 반말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자신의 출신지 정도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생의 전반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적었기에. 여태까지는 자기 본위로 돌아다니며 쌓여있던 지루함을 해소하려는 듯 굴었지. 드디어 나에게 관심이 생긴 걸까? 좋은 일인걸! 그는 타고나길 긍정적인 사람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꺼내어 잠금화면을 보여주었다. 설지와 밀리가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여기, 키 큰 사람이 제 주인이에요. 멋진 사람이죠? 이름은 견설지라고 해요. 저랑 함께한 지는 7년 정도 지났는데... ..."

 

여기서 밀리가 아는 사실과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우선 아는 사실. '릴리아가 자신에게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라는 전제는 참이었다. 그러니 여기에서 '릴리아가 견설지에게도 흥미를 보일 수 있다'라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는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클라라가 릴리아의 것인 만큼 설지도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그러한 대전제는 밀리의 알고리즘에서 바뀔 일 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게 얼마나 뼈저린 무지였으며 착각이었는지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응. 키가 크고 시원시원한 인상이네. 성격도 분명 그렇겠지? 밀리는 좋은 주인을 뒀구나. 나중에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이 사람이 궁금해졌어. 그 말까지 들은 밀리는 입에 머금고 있던 트로피컬 에이드를 주르륵 흘렸다. 어머, 얘. 조심해야지. 릴리아가 앞섶과 입가를 쓱쓱 닦아주는 동안에도 연산 처리가 마무리되질 않았다. 만나보고 싶어? 에이, 설마. 아닐 거야. 릴리아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하지만 행동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긴 하잖아. 밀리는 자신의 마음 속에 이토록 추악한 감정이 들어있는 줄을 처음 알았다. 사소한 신호로 상대방을 의심하는 일, 자신에게 향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마냥 곤란하기만 했던 일. 그는 곤란한 낯이 되어 릴리아를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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