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 5

2024. 11. 11. 19:43

그는 내게 '별 다를 바 없어' 라고 말해주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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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예고한 대로 서큘러키에 왔어요. 낯선 장소라 피곤했던 탓일까요? 에너지 소모가 빠르길래, 셔틀에서는 안드로이드 전용 충전석에 앉아서 왔어요. 다들 절 신기하게 보시더라고요. 시드니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한국의 지하철에서도 같은 경험을 했거든요.  

"혼자예요?"

몇 달 전, 대중교통을 타고 조금 멀리 있는 식료품 점에 다녀왔을 때의 이야기다. 천으로 된 쇼핑백 속 아슬아슬하게 집어넣은 사과에 신경을 쓰고 있던 밀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혼자냐니까. 반말로 바뀐 물음이 재차 들려오자 시선이 향했다. 네, 동행인은 없습니다. 예의바르게 답하면 그는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밀리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의뭉스러운 미소는 덤이었다. 

 

"여기 안드로이드 충전석인데, 알고 앉은 거예요? 난 못 앉겠던데, 감전될까 봐서."

 

"알고 앉았습니다. 저는 안드로이드가 맞으니까요."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건조한 태도를 취했지만, 그 사람은 끈질기게도 밀리의 인간성에 질문을 던졌다. 아까 전화할 때부터 봤어요. 진짜 사람처럼 웃던데? 아니, 요즘 말하는 그건가 봐. 돌이라고 표현해도 문제없었다. 설마 진짜 감정을 느껴요? 그런 척 흉내내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질 나쁜 상술이야... 밀리는 조용히 손가락을 뻗어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눌렀고, 소리지르던 사람이 끌려나가고 나서야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나쁜 일은 전혀 없었어요. 도중에 또 좋은 사람을 만났거든요. 어쩜 우린 친구가 되었던 걸지도 몰라요! 그의 이름은 클라라인데, 프로미나드의 미술관에서 근무한다지 뭐예요? 제가 꼭 관람하러 오면 좋겠다고 해서 기쁘게 받아들였어요. 

 

"혼자예요?"

 

핸드백이 잘 잠기지 않아 애를 쓰던 밀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저, 옆자리가 비었으면 앉아도 될까요? 말이 길게 이어지자 시선이 향했다. 네, 앉으셔도 괜찮아요. 예의바르게 답하면 그는 조심스럽게 앉아 고맙다는 미소를 지었다. 이쪽 걸쇠가 어긋났네요. 가볍게 손을 뻗어 밀리를 도와주기까지 했다. 아,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여행객이신가요? 이쪽 열차를 타시다니, 사전 조사를 잘 하고 오셨나 보네요. 보통은 택시를 타던데."

 

"저도 한 블로거께서 알려주셨는걸요. 다다음 역에서 내려서 5분 정도 골목을 지나가면 바로 프로미나드가 나온다면서요?"

 

예상했던 바는 아니었다. 밀리와 클라라는 말이 잘 통했으며, 잠깐 즐거운 수다를 주고받은 끝에 SNS 연락처까지 교환하고 헤어졌다. 잘 가요. 미술관에 오면 꼭 연락해요! 정말 친구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내가 근무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좋은 곳이거든요. 밀리는 조용히 손을 흔들며 미소지었고, 그의 등이 사라진 후에야 손을 내렸다. 

 

저는 그래서 사람이 싫지 않아요. 남을 해치고 싶어하는 자들은 세상을 가득 채웠지만, 그들로부터 남을 지켜주고 싶어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하거든요.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선인도 될 수 있고 악인도 될 수 있어요.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정의를 믿고, 바라는 것을 수용하면서 살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클라라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밀리가 해안 거리를 한 번 둘러본 뒤 방문하자마자 기쁘게 뛰어나왔으며, 직접 안내를 자청하여 즐겁게 해 주기도 했다. 조개껍질로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작품이에요. 이 화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표현하기 위한 재료로 바다의 선물을 골랐죠. 맨 왼쪽의 표정을 보면... 클라라는 4층의 카페에 올라가서야 자신도 안드로이드 파트너가 있다고 밝혔다. 

 

"한눈에 보자마자 알았죠. 당신 또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걸. 지금 당신의 파트너는 어디 있나요?"

 

"하하, 파트너... 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그는 지금 한국에서 나를 기다려 주고 있어요."

 

새로 사귄 친구와의 대화가 끝난 후, 밀리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로 향했다. 입장해 오페라가 상영되길 기다리면서 오늘 일기에 적을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 새로이 깨달은 생각. 그중에서도 제일 확고한 한 문장.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저 역시, 사람이 맞는 것 같아요. 그들과 함께 어딘가에 소속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나와 설지 사이를 딱 잘라 나누고 싶지 않고, 다르지만 서로를 이해하며 섞이고 싶어요. 클라라와의 만남으로 더 확실해졌어요. 왜냐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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