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 6

2024. 11. 12. 21:53

 

저는 그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요. 의심하고 싶지 않다는 것에 가깝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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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이야. 이야기의 힘은 정말 위대해."

 

오페라 하우스에서 걸어나온 밀리는 잠시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숨을 쉬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몸이었지만, 감동을 해소하기 위해 심호흡할 필요가 있었다. 곡선을 그리는 지붕 위에 반사되는 야경의 불빛, 웅성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잠시 감상하고 있었다. 누군가와 이 감동을 나누고 싶은데... 여태까지 인간의 창작물을 접해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공연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문화생활은 좁은 반경 - 견설지의 인지 반경 - 안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설지는 모르고 내가 아는 것이 늘어가네요.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설지에게는 아쉬운 일이겠죠?"

 

그렇게 중얼거린 밀리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 안에는 방금 사귄 친구의 연락처가 들어있었다. 네, 저예요. ...아, 클라라 씨의 동반자 되시는 분이군요? 실례했어요. 저는 오늘 클라라 씨에게 신세를 진 사람인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클라라가 아니었고, 밀리는 그 사실에 대하여 유려한 말솜씨로 잘 설명해 보려 했다. ... ...그럴 리가요! 아니에요. 전화를 건 적은 지금이 처음인걸요. 확인해 보시면... ...네? 만나자고요?! 목소리가 커졌다 가라앉으면 주위 사람들이 그를 한 번씩 힐끔거렸다. 

 

"아뇨. 시간 괜찮아요. 네, 그럼 보타닉 가든에서 뵈어요."

 

전화를 끊은 밀리는 울상이 되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떤 역경에도 놀라지 않을 각오를 하고, 가능한 불행의 경우의 수를 모두 가늠한 뒤 여행을 결정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그의 계획 안에 없었다. 예상만으로 모든 게 이뤄지진 않는구나. 밀리가 시드니에 도착하고 나서 처음으로 당황한 순간이었다. 

 

믿어져요. 설지? 방금 연극을 보고 나왔는데, 곧바로 이런 연극같은 상황에 처해버린다는 게 말이에요. 저는 시드니에서 처음 사귄 친구의 내연녀로 오해당한 참이에요. 이제부터 그 오해를 바로잡으러 가야 해요. 부디 제게 행운을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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