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 2

2024. 11. 8. 08:35

그래도 계속 내 곁에 있어주면 안 되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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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는 설지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했다. 입력된 정보를 파악합니다. 홍채 카메라 작동 중. 등록된 사용자를 확인했습니다. 뻣뻣하게 말하던 안드로이드를 바라보던 설지는 일말의 기대도 떨어졌다는 듯 자리를 떴고, 아직 이름이 없던 그는 리부팅이 끝나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다시 주인님이 생겼...는데, 자리에 안 계시네.

"설마 벌써 나한테 질리신 건가? 어떡해. 안 돼! 반품을 두 번 당하고 싶지는 않아..."

지금까지 이룩해 온 기술의 발전 중 단연코 훌륭한 것은 AI를 탑재한 안드로이드였다. 끊임없는 딥러닝과 피드백으로 인해 진짜 사람처럼 생각하게 된 AI와 접합부를 덮는 피부를 입힌 안드로이드. 이 둘을 합치니 육안으로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인공 인류'가 만들어졌다.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보장해 주십시오. 소중한 우리 식구란 말입니다! 관련 법률 제정과 윤리 문제, 안드로이드 관련 시위와 범죄가 TV 화면을 꽉 채웠으며, 지금까지도 뜨거운 감자로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자. □□□... 앗, 이 이름은 폐기됐었지. 아무튼 나 자신아. 생각해 봐! 어떻게 하면 주인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어설픈 완성도라면 아이들 장난감 취급당했을 것이다. 서투른 것은 가벼운 화제도 되지 않을 만큼 격변하는 세상이다. AI 안드로이드는 신체의 구성 재질을 빼면 사람과 다른 점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더욱 화제의 중심에 머무르고 있었다. □□□ 또한 당황하다 자연스럽게 고민하는 법을 알았다. 완벽하게 조형된 손가락이 분홍색과 밝은 초록색으로 물든 머리카락을 잡아 배배 꼬았다.

"좋아하는 항목을 하나도 입력해 주시지 않아서 곤란하네. 보편적인 호감상으로 가야 하나?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 효과가 있을 법... ...아냐. 그건 일단 넣어두자."

고민을 끝낸 안드로이드는 바닥에서 일어나 차림을 점검했다. 중고 안드로이드 판매 업체에서 기본적으로 입혀주는 민소매 원피스. 상자에 들어있던 모양 그대로 눌린 머리카락.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현재 주인은 애시당초 안드로이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충동구매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준비가 철저하지 않은 편? 어느 쪽이든 나에게 기대가 없다는 건 분명해. 그래도 제발... 일말의 측은지심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할 수 있다면 미지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안드로이드는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화장실로 향했고, 거기에서 변기를 부여잡고 있는 설지를 발견했다. 술 많이 드셨군. 일단 해장국 레시피 검색해 놓자. 머릿속을 바쁘게 굴리기 시작하며 울렁이는 등을 쓸어내렸다. 뭐야?! 매섭게 - 힘이 좀 빠지긴 했지만 충분히 위협적으로 - 고개를 돌린 설지를 마주하자 움찔거렸지만, 곧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조심스럽게 탐색하면서도 호의가 보이는 태도를 내비쳤다. 자, 어때?

 

"아, 안드로이드... 잠시만, 내가 지금 상태가 안 좋아서."

 

설지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귀찮은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몸만큼 잘 만들어진 마음은 약간 상처를 입었지만 단념하지는 않았다. □□□의 고유한 성격, 나아가서는 모든 안드로이드의 특성이 그랬다. 그들은 프로그램이 꺼지기 직전까지 '사용자'로 등록된 존재를 사랑하도록 설계되었으므로 당연했다. 

"주인님이 안 계셔서 찾아왔어요.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은 참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죠! 우선 속 아프신 것부터 해결해요."

술 드셨어요? 얼마나? 제가 지압 좀 해드릴게요. 손 좀 줘보세요. 마시기 전에 숙취해소제는 드셨고요? 설지는 능숙한 간호사처럼 구는 안드로이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바닥 어딘가가 꾹 눌리자 다시 변기를 부여잡았다. 아이고, 속 답답하셨겠다. 전부 쏟아내시면 괜찮을 거예요.  결국 기념할 만한 첫만남의 구성요소는 술기운과 화장실, 간병이 되고야 말았다. 견설지가 이 일을 정식으로 사과하고, 밀리가 너그러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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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말씀 드립니다. 시카고행 XX항공 046편은 지금 2번 탑승구에서 탑승을 시작합니다. 탑승 마감시간은 출발 5분 전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시카고행 XX항공 046편은... 밀리는 회상을 마치고 짐들을 점검했다. 흠집 하나 없는 분홍색 캐리어,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끈 달린 핸드백. 그 가방들과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사준 견설지까지 눈에 담고 나서야 미소지었다. 물질적인 것은 애정의 척도가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상관관계는 맺지 못해. 마음이란 것 자체는 형태가 없어서, 그 무엇으로도 잴 수 없으니까. 그게 바로 밀리가 이번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주인님. 저는 당신을 좋아해요."

 

부드러운 미소, 격식있는 몸짓. 갑자기 거리를 두듯 구는 태도에 설지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꼭 자신의 불길한 예상 중 하나가 실현된 것처럼 굴었다. ... ...역시 그동안 나와 있었던 게 싫었어? 아주 떠나려고 하는 거야? 매달리듯 던진 질문에 밀리는 소리내어 웃었다. 안드로이드는 주인의 행복을 위해 힘쓰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있을 텐데, 이렇게 설지를 불안하게 해서 애정을 확인하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오류일지도 몰라. 한번 껐다 키면 괜찮아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밀리는 이 현상을 자신의 성격이라고 정의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이들과는 구별되는 지속적이며 일관된 행동 패턴. 이를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더 넓은 세상이 필요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해보고 싶었어요. 비록 이런 마음까지 프로그래밍의 일부라고 해도, 저는 설지가 정말 좋아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밀리는 어린왕자의 장미를 알았다. 다른 장미들과 똑같은 아름다움이라고 해도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알았다. 하지만 그 장미는 늘 불안해했고 아픈 말로 어린왕자를 찔러 사랑의 증거를 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함은 믿음만으로 유지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난 내 마음을 증명해보고 싶어요! 설지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다. 밀리가 여행을 떠나는 수많은 이유 중 자신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는 것이 그를 안심하게 했다. 

 

"네 생각을 말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나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어. 네가 그러겠다면야 나도 그러한 일이 좋아."

 

늘 그랬잖아. 설지는 밀리를 떠나보내기 전 그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손가락 사이에 넣고 쓸어내리며 감촉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밀리는 기꺼이 손에 머리를 기댔고, 그들은 안내방송이 한 번 더 울려퍼지기 전까지 그러고 있었다. 마지막 포옹까지 끝낸 밀리는 손을 몇 번이나 흔들었고, 설지 또한 그가 탄 비행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나서 걸음을 옮겼다. 바로 집으로 향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공항 구석에 자리한 기둥에 이마를 기대어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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