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사랑
2024. 1. 3. 19:18
삶은 종종 그에게 눈가리개를 씌우고 저울과 칼을 들려 무언가를 판단하게 시키곤 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여인은 손끝의 무게로 그것들을 판단하고, 더 가볍다 판단한 쪽을 베어내는 일을 했다.
어느 날, 혼돈과 절망을 좋아하는 악마가 그의 저울 위에 무언가를 몰래 올려놓았다.
하나는 그의 연인이었고, 또 하나는 세상의 모든 목숨이었다.
단순한 숫자 계산이었으니, 악마는 그가 사랑하는 이를 베어낸 뒤 연인의 비명을 듣는 것을 원했다.
그는 칼을 조금 고쳐 잡고는 그대로 먼 곳을 향해 던져버렸다.
그곳에서 구경하고 있던 악마의 비명이 울리면, 여인은 자유로워진 손으로 눈가리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연인과 시선이 마주치면 그는 조금 쑥스러운 듯 웃었다.
내가 당신을 무언가와 저울질 할 리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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