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 17
그 마음을 알기에 나와 자리를 바꿔 준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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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유가 아닌 안드로이드와 집으로 돌아간 클라라는 그 날 내내 침울한 표정이었다가, 위스키를 얼음도 없이 들이킨 후에는 대놓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왜 말리지 않았어요? 난 밀리를 믿었는데... 릴리가 엉뚱한 면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밀리는 그걸 익숙하게 달래며 스스로의 머리를 잡아당기는 클라라의 손을 말렸다. 릴리아가 써 준 편지를 봤잖아요. 그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으니... 이틀만 기다려 줄 수 없을까요?
"휴... 그렇죠. 마냥 사고친 것처럼 대하면 안 될 텐데. 아까도 릴리에게 한 소리 하려다가 설지 씨가 말려주셨는데 말이죠. 전 아직 멀었네요..."
전화로 노발대발하려던 클라라를 말린 건 다름 아닌 견설지였다. 인간에게 가차 없는 그는 '진정 좀 하세요.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습니까?' 라는 말로 분노를 소강시켰고, 차분한 대화 몇 마디를 통해 클라라에게서 '그래. 알겠어. 한국에서 만나자.' 라는 대답을 이끌어냈다. 팔짱을 낀 채 듣고 있던 릴리아는 손끝으로 박수를 쳤다. 너도 잘한 건 없어, 말괄량이 아가씨야.
"상황 판단이 빠른 사람이죠? 그래서 괜찮다고 한 거예요."
릴리아는 설지와 잘 있을 테니, 우리도 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밀리는 클라라의 입에 레몬 조각을 가져다 대고, 받아먹은 얼굴이 찌푸려지는 걸 보면서 소리내어 웃었다. 그것이 클라라에게 전염되는 틈을 타서 술잔에 물을 따랐다. 취하면 소주에 물 섞어도 모르던데. 위스키는 어떨지 모르겠네.
"그러니까... 결론은, 벌써 릴리가 보고 싶어졌어요."
난 진짜 너 없으면 안 되는데. 잠시 뒤, 클라라는 그 말을 남기고 테이블에 쿵. 하고 엎어졌다. 아이고! 이마 괜찮아요? 자자, 이제 들어가서 주무세요. 술 취한 사람의 뒷정리를 하는 것도 익숙했다. 외출복을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술상을 치우고는 술기운에 곤히 잠든 얼굴을 바라보는 것까지가 순서였다. 형체 없는 고민에도 형체 있는 근심에도 술은 좋은 진통제였으니까.
"괜찮아요. 정말로. 릴리아는 그리움을 키우기 위해 멀어진 게 아니에요."
자기가 없어도 당신이 잘 살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대요. 밀리는 클라라의 침대 옆에 기대어 앉았다. 반수면 상태 설정. '설지가 취했을 때'에 입력된 커맨드를 자동 적용합니다. 도중에 졸면서 클라라를 화장실에 데려가고, 등을 두드려 준 다음 입을 헹구게 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또 뜨면서 긴 밤을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