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 10
가끔은 많이 아끼는 만큼 멀어져야 할 때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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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부터 갈까요? 근처를 지나가기만 했지, 와서 놀아보는 건 처음이에요. 클라라는 그렇게 안 생겨서 바다를 별로 안 좋아하니까~"
한껏 심란해진 밀리와 달리 릴리아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는 거대한 캐리어를 다시 덤불 안에 넣고, 밀리를 잡아끌어 새하얀 모래사장으로 향했다. 방금, 릴리아는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쪽에 속하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꾸밈없는 말이 날아와도 미소는 여전했다. 그걸 이제 알았어요? 내가 밤중에 불러냈을 때 진작에 눈치챘어야지.
"저도 한 자유로움 하는데, 릴리아는 못 이기겠네요. 이게 바로 생태계의 법칙인가요? 좋아요."
짧게 한숨을 쉰 밀리는 샌들을 벗어 손에 들었다. 진작에 신발 없이 걷고 있었던 릴리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알겠어요. 그렇다면 적어도 이유라도 설명해주지 않을래요? 진심 어린 호소는 안타깝게도 바로 통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 삶의 자극만이 살아가는 이유인 사람. 릴리아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모래를 만끽하고 있었다. 발등 위로 부드러운 모래 물결이 치면 기분이 좋은 듯 소리내어 웃었다.
"릴리아. 내 말 듣고 있어요? 나는 정말...!"
"알았어요. 알았어. 너무 급하게 굴지 말아요~ 오늘은 아직 많이 남아있잖아요? 우선 이 순간을 즐기는 게 좋을 거예요."
내가 그럴 기분이 들었을 때 한번에 이야기해 주도록 할게요. 어느새 보호자처럼 릴리아를 쫒아가던 밀리는 입을 떠억 벌렸다. 얄미울 말만 하는데 밉지 않았고, 제멋대로 구는데도 용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그와 알게 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래. 이제 좀 더 알 것 같아. 이 사람은 정말로 '하나뿐인 장미' 구나.
밀리는 그에게 약간의 질투를 느꼈으며, 동시에 그 속내가 궁금해졌다. 어떤 기질을 지녔으며,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저런 매력적인 사람이 된 걸까? 알고 싶어졌다. 명확한 동기가 하나 생기니 밑지는 장사가 아니게 되었다. 잠시 멈칫했던 걸음이 다시 성큼성큼 나아갔고, 벌써 저 멀리의 바다를 향해 가던 릴리아를 붙들었다.
"그렇다면야 기꺼이 기다릴게요. 난 그런 걸 잘 하니까요. 대신 당신도 나를 그만큼 재미있게 해 줘야 할 거예요!"
이것 봐라? 라는 듯 릴리아의 눈이 커졌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당돌하게 굴어 예쁨을 사는 일은 자신도 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모든 장미의 숙명인 것처럼,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자 특유의 매력인 것처럼.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면 릴리아는 샐쭉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온화하기만 하던 얼굴에 잔뜩 장난기가 떠올랐다.
"물론이죠. 나와 함께 있는 건 재미있을 거예요. 봐요, 지금도 나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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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릴리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참말에 덤을 잔뜩 얹어서 줬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자, 잠시만 쉬었다 가요... 밀리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부들부들 떨며 릴리아를 붙잡았다. 마찬가지로 온몸이 젖은 릴리아는 '재미있어!'를 얼굴에 드러내며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앉아요. 수건이 필요하죠? 다정한 언니처럼 밀리를 앉혀놓고 얼굴을 톡톡 닦아주었다.
"이제 와서 그래도 소용없어요. 왜 상급 코스를 추천해 준 거예요? 강사가 나를 서핑 보드에 태우고 냅다 밀길래, 이대로 떠내려가서 상어 밥이 되는 건 아닌가 싶었다고요..."
"하지만 재미있었죠? 원래 뭐든 실전에서 배우는 법이잖아요. 마지막에는 꽤 잘 타게 되었으면서 그러네."
반박할 수 없어졌으니 가만히 닦아주는 손길만 받았다. 그런 밀리를 본 릴리아는 몇 번인지 모를 웃음을 터트리고는, 손을 뻗어 볼을 주욱 늘렸다. ...어 하히는 거헤여... 웃는 얼굴, 더군다나 미인의 미소에 침을 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밀리랑 같이 있으면 재미있어서요. 그 말에는 체면도 없이 후훗.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저도 재미있었어요. 릴리아는 정말 잘 노네요? 평소에도 클라라랑 이렇게 놀아요?"
"예전에는 그랬죠. 최근에는 같이 논 적이 별로 없어요."
여기다. 밀리의 귀가 살짝 쫑긋였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릴리아의 삶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에 관해서 아직 흥미가 있었다. 그러므로 살짝 드러난 대화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요? 클라라가 많이 바빴나 봐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물으면 릴리아도 쉽게 답해주었다. 그것도 그랬죠. 날 돌보고, 좋은 삶을 살게 해주기 위해서요.
"그러고 보니 슬슬 말해줄 때가 됐죠? 밀리와 나를 바꿔치기 하려는 이유. 그 중 하나는 클라라를 쉬게 해 주고 싶어서에요. 깨어있는 동안은 늘 내 걱정뿐이니까."
당신이라면 분명 그 애를 마음 편하게, 즐겁게 해 줄 거 아니에요. 밀리는 그 짧은 순간 릴리아에게서 쓸쓸함을 읽었다. 또한 자기 자신의 옛날도 떠올렸다. 비록 이런 마음까지 프로그래밍의 일부라고 해도, 저는 설지가 정말 좋아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약간은 알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