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 8
내일 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을래요? 분명 재미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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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한 모양이네요. 저는 밀리를 추궁할 생각이 없었어요. 제 말투가 그렇게 무서웠나요?"
밀리는 대답하지 않은 채 웃었다. 그린 듯한 완벽한 미소를 파악한 릴리아는 재차 물었다. 조금 곤란했죠? 안드로이드 간이니 숨길 수도 없었다. 네, 약간요. 그는 표정에서 미소 샘플 12-2를 지우고 진지하게 굴었다. 이 순간, 그는 한국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처음 견설지를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클라라에게 어째서 새로운 동반자가 필요한가요? 당신이 있는데."
"필요하게 될 거예요. 내 몸체의 내부 부품은 이미 몇 번이고 교체 과정을 거쳤으니까."
모호한 말이었지만 바로 알아들었다. 안드로이드 간이니 부가 설명은 필요없었다. 실례지만 제작 연도가? 릴리아는 여전히 웃으며 답했다. 2006년 K사 모델이에요. 그 말에 막을 새도 없이 탄식이 새어나왔다. K사는 일부러 안드로이드의 내구성을 약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소송이 걸린 적이 있으며, 지금은 재기할 바 없이 망해버린 기업이었다. K사의 물건은 중고거래에서도 좀처럼 매물이 나타나지 않았다.
"거기에다 2006년이면... K사 모델 중에서도 꽤나 초창기 모델이네요."
"맞아요. 바로 알겠죠? AS도 안 돼, 내구도도 약해. 게다가 원래라면 기동을 멈췄어야 할 몸이에요. 클라라가 어떻게든 구해온 부품들로 연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인간으로 치면 시한부 환자죠. 끝에 덧붙인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떻게든 해 주고 싶어,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바쁘게 돌아갔으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새로운 모델에 정신만 이식하는 것, 이미 생각해 봤겠지. 받아들이지 않은 거야. 그건 진짜 '나 자신'이 아니라고. 항상 이런 무게는 짊어진 쪽이 오히려 가볍게 구는 법이었다. 릴리아는 커피잔을 들어 가볍게 마시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공원 안으로 들어왔다 흩어지는 밤바람과, 자신의 옆에서 곤란한 얼굴을 하고 앉아있는 꽃 같은 안드로이드.
어느 순간부터 이런 바람이 되고 싶었다. 자유롭게 날아올라 모두의 머리카락을 한 번 훑고, 그 이상의 흔적은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존재. 잠깐 와닿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소중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사랑하기에 그는 클라라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바람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지 않기를 바랐다. 너에게는 곁에서 좀 더 머물러 줄 수 있는, 이런 애가 좋았겠는데.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일단, 저도 동반자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야겠네요. 클라라 씨의 의견이 어떤지는 둘째치고, 그건 불가능한 말씀..."
직설적인 거절의 말에도 릴리아는 실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음, 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낸 후, 밀리의 손을 살짝 잡고 웃으며 제안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밀리는 잠깐이나마 클라라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런 점이 릴리아의 매력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