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밀] 영원한 것

영원한 것 1

김다고다 2024. 11. 7. 14:18

하지만 너만큼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어. 

.

.

.

"설지. 이제 슬슬 일어나야죠! 휴일이라고 해서 잠만 자면 되겠어요?"

30평 남짓의 아파트 거실에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1365가지 음성 중 594번째 파일. 밀리는 처음 구매되었을 때부터 이 파일이 탑재되어 있었으며 설지는 그걸 바꾼 적이 없었다. 옛날이든 지금이든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그럴 만큼의 관심이 없었고, 지금은...

 

"하암... 일어났어, 지금 눈 떴어. 어제 늦게까지 처리할 서류가 있어서... 몇 시야?"

 

현재 시각은 오전 11시 30분이에요. 씻고 점심을 먹으면 딱 좋을 시간이죠! 밀리는 가벼운 프릴이 달린 앞치마를 입고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 따끈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너를 구성하는 것들의 전부가 '밀리'인데, 내가 감히 어떻게 바꾸겠어.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명백한 사실이 있었다. 혹자는 혀를 찰지언정 바래지 않는 의미가 있었다. 견설지는 자신의 가정용 안드로이드인 밀리를 사랑하고 있었다. 

 

"닭볶음탕 맛은 어때요? 이번에 XX회사에서 새로 밀키트를 출시했길래 사 봤어요. 제 미각 센서에는 적절하게 느껴지긴 했는데~ 설지 입에는 또 다를 수도 있잖아요?"

 

밀리가 그렇게 물으면 건너편에서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까지 한 컵 들이킨 설지는 그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맛있어. 하지만 내 입맛에는 조금 달달하네. 그는 구태여 사랑하는 상대를 속이지 않았다. 항상 진지하고 솔직하게 속마음을 전했고, 함부로 밀리의 기억에 손대거나 조작하지도 않았다. 밀리는 그런 설지의 모습을 좋아하고 있었다. 어쩌면 '좋아한다'라고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럼 다음에는 간장 반 스푼, 식초 반 스푼을 추가해서 조리하는 것이 적절하겠네요. 기억해 두세요."

 

제가 여행을 떠나면 설지 혼자서 식사해야 하니까요. 밀리는 알았다. 자신이 이 화제를 꺼내기만 하면 설지의 눈썹이 미세하게 처지고, 괜히 밥을 퍼먹어 입을 막는다는 것을. 하지만 계속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분리에 대한 불안과 상실감을 경감시켜야 할 때는 자주 비슷한 상황에 노출시켜 긴장을 이완할 필요가 있지. 그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설지가 들으면 펄쩍 뛸 소리였다. 

 

"...너 말이야. 30대 중반의 여자한테 살림 가지고 걱정하는 안드로이드는 너밖에 없을 거야."

 

"애정의 증빙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설지는 제가 없으면 청소도 식사도 대충 하니까 그러죠!"

 

꼭 약속해요. 빨래는 최소 일주일에 한 번 돌리고, 가벼운 청소는 매일 하기로. 식사는 영양소 균형을 생각해서 꼬박꼬박... 밀리는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설지는 또 밥을 입 한가득 넣어 대답을 피했다.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점심의 풍경이었으며, 밀리는 이 순간을 유독 좋아했다. 그러므로 꼭 확인해야만 했다.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이 '진실된' 것인지를.